“제발 채식 좀 넣어줘요” 자가격리 ‘채식주의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가격리 채식주의자들 식단 불편 호소
“흰 쌀밥에 김 먹는 것 외에 먹을 것 없어”
“채식주의는 단순한 기호 아냐”
“동물 착취를 하지 않겠다는 신념이자 양심”

인천 지역 코로나19 자가격리자 보급품. 사진은 기사 중 특정표현과 관계 없음. 사진=카라 제공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이건 채식주의자들 입장에서는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자가격리 상태에 들어간 이들 사이에서 보급품에 채식을 넣어달라는 ‘채식주의자'(菜食主義·vegetarianism)들의 요구가 이어지고 있어 이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코로나19 확진 우려가 있어 자가격리에 들어가는 등 긴급한 상황에서 국가가 개인의 식성을 맞춤형으로 관리할 수 없다는 지적이 있는 반면 채식주의자들 입장에서는 단순 식성이나 기호가 아닌 절대적으로 중요한 문제라는 반론이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29일 서울, 인천, 고양 등 몇몇 지방자치단체의 자가 격리 중 보급품을 조사하여 이 보급품이 절제와 환경보호와 같은 코로나19 극복의 정신을 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 영양적으로도 육식에 치우쳐 있으며 채식주의자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16일 강원 강릉시청 공무원들이 코로나19 자가격리자에게 제공할 비상식량 세트를 만들고 있다. 사진은 기사 중 특정표현과 관계없음.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카라에 따르면 코로나19 자가격리자들을 대상으로 보급된 대부분 식재료들은 닭고기나 돼지고기, 쇠고기로 만든 식품들이며 레토르트 식품(오래 보관할 수 있도록 살균하여 알루미늄 봉지에 포장한 식품)이나 통조림 식재료도 대부분 소, 돼지, 닭 등 육류였다. 비건 채식주의자라면 이 보급품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카라는 비판했다.

 

카라는 수집한 보급품 목록에 따르면 비건 채식주의 경우 흰 쌀밥에 김을 먹는 외에 먹을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카라는 해당 보급품은 채식주의자는 물론 일반인의 영양 공급에도 크게 도움이 안되며, 2주간이나 외부와 차단되어 운동 부족과 체중 증가로 인한 대사성 질환의 악화와 이로 인한 우울감에 빠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채식주의자의 경우 보급된 육류들을 폐기하거나 다른 이에게 주기도 꺼려져 낭비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카라의 지적이다.

 

경기 고양 지역 코로나19 자가격리자 보급품. 사진은 기사 중 특정표현과 관계 없음. 사진=카라 제공



이른바 ‘자가격리 채식주의자’들 식단에 대한 우려와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일부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40대 회사원 김 모씨는 “자가격리 상황은 매우 긴급하고 위중한 상황이라는 얘기다”라면서 “(그들의 주장을 보면) 그런 상황에 ‘채식’만 고집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 논의를 해야 한다는 건데, 여기까지 나라가 신경을 써야 하는지는 솔직히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또 자가격리 기간을 보면 2주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2주 동안 채식을 하지 않거나, 김과 밥만 먹을 수 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30대 회사원 이 모씨는 “채식주의자들의 의견에 모두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해도, 자가격리 상황에서 의료진이나 국가에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른 사람들 역시 같은 논리로 이것저것 요구하다 보면 자가격리가 아니라 ‘국민 맞춤형 자가격리’가 되지 않겠나,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채식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라는 견해도 있다. 20대 대학생 이 모씨는 “단순 식성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채식 아니면 정말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게 이번 논란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채식주의자가 많지도 않으니 그런 부분은 신경 써줄 수 있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1월12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 앞에서 열린 ‘군대 내 채식선택권 보장을 위한 국가인권위 진정 기자회견’에서 입대를 앞둔 진정인들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군대 내 단체급식에서 채식 선택권을 보장하는 정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일괄 급식에 대한 채식주의자들의 채식 식단 요청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녹색당,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동물권행동 카라 등 3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해 11월 입대를 앞둔 진정인 4명과 함께 서울 중구 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군대 내 채식선택권을 보장하는 정책을 마련하라”고 국방부에 촉구한 바 있다.

 

이들은 “채식주의는 단순한 기호가 아닌 동물 착취를 하지 않겠다는 신념이자 양심”이라며 “채식선택권 보장은 채식인들의 행복추구권과 건강권, 양심의 자유 등과 결부돼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카라 관계자는 채식주의자들에 대한 국가의 배려를 당부했다. 관계자는 “코로나19 방역의 핵심은 확진자 치료와 밀접 접촉자들로부터의 추가적 감염 차단이 될 것”이라며 “정부는 자가격리자 생활 수칙을 제시하며 준수를 명하고 있는 만큼, 이에 순응하고 격리 기간을 건강하게 보낼 수 있는 세심한 배려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모두가 힘들고 방역 공무원들의 업무도 과중할 것이다. 하지만 자가격리자 중 엄연히 채식주의자도 존재하며 이들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며 “이 위기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할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신선한 과일이나 보관이 용이한 채소, 육류가 들어가지 아니한 반찬, 현미 즉석밥, 채식주의자용 만두나 라면 등은 외출과 운동이 제한된 2주간의 격리 기간 동안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고 꼭 필요한 식재료가 될 것이다. 이를 준비하여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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